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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삼건의 미래도시(10)]도시 공공 인프라의 한계와 가능성
작성자 울산도시공사
작성일자 2022-10-26
조회수 149

지난 10월 초 연휴를 끼고 어릴 적 동네 친구 7명과 일본 여행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잠겼던 관광 길이 열리면서 비자도 받고 가이드까지 동행한 만 2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우리가 입국한 나리타공항은 지금까지 다녀 본 중에 가장 한산했다. 귀국 길에 들른 면세품 매장도 태반은 폐점상태였고, 그나마 문을 연 곳도 변변한 상품이 없었다. 코로나 펜데믹의 충격을 나리타국제공항에서 제대로 실감했다.

우리 일행은 3박4일 내내 전세버스를 이용해서 도쿄와 주변 도시를 돌아봤기 때문에 ‘수도고속도로’를 비롯해서 ‘주오자동차도로’ ‘도쿄만안도로’ 같은 고속도로를 매일 탔다. 버스 안에서 문득 30년 전에 본 ‘NHK스페셜’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1993년 8월부터 12월까지 5회 시리즈로 방송된 프로그램 제목은 ‘테크노파워’였다. 마지막 편은 그해 12월24일 ‘거대도시 재생의 길’이라는 서브타이틀로 방송됐다. 이 특집은 나중에 내용을 조금 줄여서 우리나라 KBS에서도 방송했고, 대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최종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데, 도쿄 수도고속도로와 로마 문명에 대한 내용이었다. 방송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 건설된 고가형의 수도고속도로가 건설 후 30년가량이 지나면서 수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너무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데다가 자동차 매연의 영향까지 겹쳐서 아스팔트 파손은 물론, 상판콘크리트 내부까지 부식이 진행되어 심각했다. 이런 상황은 도로상판 콘크리트 코어를 떼 와서 실험으로 증명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가도로가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미래 시뮬레이션까지 보여주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핵심은 아무리 보수를 해 나가도 도로 노후화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서 결국 고가도로가 무너진다는 내용이었다. 고대 로마문명이 사라진 것도 제국이 번창했을 때 조성한 인프라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듯이 현대 대도시도 인프라 때문에 종말을 고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인지는 몰라도 방송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도쿄 수도고속도로는 여전히 차량으로 넘쳐났고, 공사 구간은 더러 보여도 완전히 고가도로가 무너져서 차단된 곳은 없었다. 그만큼 유지관리에 예산과 노력을 쏟았다는 방증으로 읽혀진다.

또 하나, 경부고속도로 울산구간 터널공사에 감리로 참여했던 일본인 기술사가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한국 고속철도 터널 직경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일본 신간선 터널은 직경이 약 10m이고, 우리나라는 직경이 대략 14m다. 따라서 단면적은 각각 25π와 49π가 되어서 우리나라 고속철도 터널 단면적이 2배 넓기 때문에 공사비도 일본의 2배 정도 많이 든다는 의미다. 신간선은 KTX보다 차량 폭도 더 넓고 속도도 더 빠른데 왜 우리 전문가와 정책결정권자들은 이런 터널로 만들었을까. 필자의 의문에 원로 구조공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자기 몫이 될 파이(빵) 크기를 줄이겠는가”. 충격적인 말이었다. 정말로 정책결정권자와 전문가가 더 좋은 대안을 무시하고 사익만 추구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몰라서 내린 결정이어도 문제이고, 사실이어도 문제인 것은 매한가지다.

문제는 더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건설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추진될 대규모 공공인프라 건설과정에서는 유지관리와 수명 연장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더욱 더 깊이 있게 검토해야만 한다. 만일 특정 전문가 그룹이나 건설업체, 정치인 등의 부당한 사익을 우선시하거나, 또는 기술 만능의 사고에 빠져서 이런 점검을 등한시 한다면 이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한편, 도시의 대규모 SOC사업은 도시에 활력을 가져다주고, 낙후된 경제가 돌아가게 하며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이미 가시화된 지금 우상향 성장 시대의 가치관으로 도시를 계획하고 개발해서도 곤란하다. 도쿄 수도고속도로는 아직 건재하지만, 30년 전 NHK특집이 보여준 것은 대도시에 조성된 대규모 공공인프라 건설의 기술적 한계와 해결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공학박사

 2022. 10. 26.

출처 : 경상일보(http://www.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