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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삼건의 미래도시(2)]도시문명이 사라진 이유
작성자 울산도시공사
작성일자 2022-03-16
조회수 284
인간은 오래 살아도 수명이 채 백년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직접 한 도시의 흥망성쇠를 모두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과거의 도시를 살펴보아야 하지만, 그 마저도 다른 사람이 주장한 것을 곁눈질 할 수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는 쇠퇴와 성장을 반복해온 도시도 많지만, 주민이 완벽하게 사라진 도시도 적지 않다. 사람이 사라진 도시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런 유형의 도시는 주로 자연재해로 파괴되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은 수많은 인간이 오랫동안 공들여 이룩한 도시문명이라도 삽시간에 무너뜨린다.

인류 역사상 도시문명을 파괴한 자연재해로는 대규모 화산폭발과 거대 홍수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폼페이는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두꺼운 화산재에 파묻혀서 일순간에 사라졌다. 역사기록에 처음 폼페이가 등장한 것이 기원전 310년이니 최소한 400년 이상 번성했던 도시를 일순간에 멸망시킨 것은 화산폭발이라는 자연재해였다. 최근에도 퉁가 화산폭발이 있었지만, 도시를 파묻어버리는 엄청난 화산재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1991년 일본 나가사키 운젠산 분화를 생중계한 TV 긴급뉴스를 통해서였다.

홍수가 멸망시킨 도시로는 인도 모헨조다로가 있다. 인더스강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이 고대도시유적을 20년 전인 1991년 10월에 혼자 방문한 적이 있다. 유학시절 참여했던 간다라불교유적 조사를 마치고 파키스탄 국내를 혼자서 여행하던 길이었다. 당시 와세다대학 학생이 모헨조다로 유적 부근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 탓에 분위기는 흉흉했지만 꼭 보고 싶은 곳이었기에 당일치기 여행을 감행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카라치에서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유적 인근 작은 비행장에 내리자 그곳을 지키던 군인 두 명이 소총을 들고 다가와서 경호를 하겠다고 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 현역 군인 두 명을 대동하고 유적을 돌아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고, 나중에 결국 경호비용을 지불했다. 그 당시 파키스탄은 치안이 불안해서 간다라조사단 숙소에도 매일 밤 AK 소총으로 무장한 현지인 여럿이 보초를 섰다. 발굴현장에는 어디서 왔는지 총을 든 사람들이 간혹 나타났고, 마을 잔치라도 있으면 공중으로 쏘아대는 총소리가 콩 볶듯 했다.

모헨조다로는 하라파와 함께 인더스문명 최대급 고대도시다. 기원전 2500년부터 약 700년간 번창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도시 규모는 둘레가 대략 사방 1.6km 정도이며 최대 4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헨조다로 문명은 짧은 시간에 멸망한 탓에 그 원인으로는 여러 학설이 있는데, 대규모 홍수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직접 돌아본 모헨조다로 도시유적은 동쪽의 시가지 구역과 서쪽의 요새 구역이었다. 시가지는 바둑판 모양의 정연한 도로망과 배수로, 그리고 벽돌로 만든 다양한 유형의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서쪽 유적의 거대한 진흙 탑은 파키스탄 지폐디자인에도 쓰이고 있는데, 그 아래로는 대 목욕탕과 곡물창고, 회의장 등 공적인 건물 유적이 있다. 특히 목욕탕과 곡물창고가 가까워서 이곳이 정치중심일 뿐만 아니라 재생과 생산을 비는 종교중심 역할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는 고려 초인 946년에 백두산 폭발이 있었지만, 화산폭발이나 지진 피해로 도시가 사라진 역사는 없다. 그리고 온대 몬순 기후에 속해서 크고 작은 홍수와 태풍도 다반사지만 이런 원인으로 도시를 버린 예도 없다. 그러나 수백 년 간 번성하던 폼페이나 모헨조다로를 일순간에 사라지게 만든 자연의 힘은 우리에게도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부터 탄소중립 관련 논쟁이 뜨거운데, 지구 온난화가 인류생존의 위협이 된다는 경고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울산의 경우 거대 제조업단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많은 만큼 탄소배출량도 압도적이며, 울산과 인근에는 화산처럼 터질 수 있는 다양한 위험물질이 대량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미증유의 거대 태풍이나 대홍수라도 덮치면 도시는 폼페이나 모헨조다로처럼 폐허로라도 남겠지만, 우리 시민과 그들의 삶은 모두 사라진다. 방재도시 울산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미래도시 논의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한삼건 울산도시공사 사장·울산대 명예교수

2022. 2. 23.

출처 : 경상일보(http://www.ksilbo.co.kr)